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스학 파샤 (문단 편집) == 행적 == 여러 역사학자들의 저서에 의하면 그는 [[터키인]]이 아니라 [[알바니아인]]이다.[* 실제로 [[알바니아]] 정복 이후 오스만 제국의 재상을 지냈던 인물들 가운데에는 알바니아인들이 많았다. 무려 재상 중 42명이 알바니아 출신일 정도. 유명한 [[쾨프륄뤼 가문]]도 알바니아계이다.] 1451년에 아나톨리아의 베일레르베이[* 베일레르베이는 '''총독'''으로 번역되는데 담당 지역의 행정권과 형벌집행권(재판권은 중앙 정부가 임명한 지방 법관에게 있었다)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군대 지휘권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아나톨리아는 오스만 제국의 심장부였고 매우 넓은 지역이므로 이 지역을 차지하는 것은 대재상으로 오르기 위한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스학 파샤는 고작 7살에 이런 자리에 오른것이다.]에 오르고 같은해에 당시 술탄이었던 [[메흐메트 2세]][* 당시 술탄은 19살이었다. 12살부터 14살이 될때까지 임시로 즉위하고 갓 19살이 된 1451년에 다시 정식으로 즉위했는데 정권을 교체하자마자 재상도 바꾼것이다.]가 과부가 된 [[무라트 2세|선황]]의 후궁[* 술탄 하툰, [[메흐메트 2세]]의 어머니는 아니다.]과 강제로 혼인시켰다고 한다. 첫번째로 대재상 임기를 지내는 동안 악사라이 지방의 아나톨리아인들을 새로 정복한 [[콘스탄티노플]][* 메흐메트 2세는 1453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함으로서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켰다. 즉위한지 불과 2년, 즉, 21살때의 일이다.]로 이주시켰으며 지금은 이 지역이 악사라이로 불리고 있다. 동로마 제국을 정복한지 16년이 지나고 나서 이스학 파샤가 대재상이 됐지만 아직도 이주는 진행중이었던 모양이다. 두번째로 대재상직을 지낸 시기는 정권 교체기였던 데다가 기간이 너무 짧아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퇴임 후 5년을 더 살고 [[그리스]]의 [[테살로니키]]에서 사망했다.[* 향년 43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